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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한국땅’임을 선포하는 특급 외교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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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8월 10일 '깜짝 이벤트‘를 벌였다. 미리 독도에 등대를 세워놓고 미국 방문 일정에 맞춰 전세계를 향해 등대 점등식을 열었던 것이다.

일본과 미국이 깜짝 놀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승만 대통령이 독도를 포함한 영해를 ‘평화선’으로 선포(1952년 1월 18일)하지 않았다면 진작 독도를 먹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이승만은 독도의 등대 점등식을 왜 하필 방미 기간에 하라고 지시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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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년은 6.25 남침전쟁이 휴전(1953년 7월 27일)한 일년 후. 미국은 한일우호관계 회복을 극동정책의 핵심으로 삼고 이승만 대통령을 공식 초청한다.

국제공산주의를 내세워 동유럽과 중국 대륙, 한반도 절반을 차지한 소련의 신식민주의 패권을 뒤늦게 깨달은 미국.

냉전시대가 본격화되자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인 한국과 일본을 화해시켜야만 했다.

이승만은 그러나 독립운동과 건국준비 때부터 줄곧 미국의 ‘좌우합작’ 압력 등을 거부해온 불굴의 지도자가 아닌가. 게다가 전쟁중에도 일본을 집중 지원하는 미국이 싫었다. 전쟁물자 공급을 도맡은 일본은 패전 10년도 안되어 일약 떼부자가 되다니. 그것도 한국을 강점했던 범죄자가 한국전쟁을 이용해 경제부흥을?

“이게 무슨 돼먹지 않은 소리야? 정상회담 필요없다. 백악관에 안간다.”

1954년 7월 30일 오전 10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2차 회담이 끝나게 되면 발표할 공동성명 문안을 보자 이승만은 분노했다. ‘한국은 일본과의 관계에 우호적이고...운운’하는 대목이 들어있기 때문이었다.


“이 친구들이 날 불러놓고 올가미를 씌우려는 모양인데...이러면 아이크 만나지 않겠다.”

백악관의 독촉과 측근들의 건의에 마지못한 듯 이승만은 뒤늦게 아이크(아이젠하워)와 마주 앉았다.

아이크는 한일국교수립이 시급하게 되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했다. 사전에 일본과 합의한 뒤였다.

“이대로는 안된다. 내가 살아있는 한 일본과는 상종 안하겠다.”

이승만은 한마디로 거절했다. 놀란 아이크는 화를 내며 옆방으로 가버렸다. 진작부터 화났던 이승만이 소리쳤다.

“저런 고얀 사람이 있나.”

회담은 결렬 직전.  잠시후 가까스로 화를 삭인 아이크가 다시 회담장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이승만이 벌떡 일어섰다.

“먼저 간다. 외신기자클럽 연설 준비 때문에...” 하고 백악관을 나와 버렸다.​

다른 나라 지도자가 미국 대통령을 기다리게 하고, 심지어 앉혀놓고 먼저 일어나버린 사례는 이 때가 유일했다.

2차 세계대전의 영웅 아이젠하워가 이승만에게는 지독하게 당했다.

사실, 한국대통령 최초로 미국을 공식방문한 이승만은 공항도착 인삿말부터 미국에 '선전포고'를 날렸다.


“겁쟁이들이 하나님이 다 차려준 밥상을 걷어찼다. 한반도 통일전쟁은 이제부터다.”


마중 나왔던 닉슨 부통령의 얼굴이 벌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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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8일 미국 의회 연설 

미국 양원합동 의회 연설은 미국정부와 미국민들의 심장을 흔들었다. 휴전을 결사반대하고 북진통일을 염원했던 이승만은 ‘성스러운 통일전쟁’을 즉시 다시 하자고 거듭 주장했다.
매카시 의원의 공산당 고발로 반공분위기가 고조되어있던 당시 미국회의원들은 33차례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소련 간첩으로 체포된 미국무성 실세 알저 히스(루즈벨트 대통령 측근)가 유죄판결을 받은 직후이기도 했다.


이튿날 이승만은 미리 준비한대로 판문점의 ‘중립국 감시위원단의 철수’와 ‘휴전협정 백지화’를 요구하는 성명서를 직접 발표했다.

언론들은 바빴다.  '외교의 달인' 이승만 특유의 현장 외교 전술은 눈부실 정도였다.

양국에서 동시 발표된 한미정상간의 공동성명서에는 ‘한일관계’에 대한 단어가 한 개도 없었다.

한국이 미국에 요청한 군사,경제원조 -무려 8억달러나 되는- 금액도 물론 합의되었다.


그때, 일본의 '독도 장난'이 있었다. 뉴욕타임즈(7월 31일자)에 ‘다케시마를 한국이 점령, 일본 주장’이란 제목이 붙은 기사가 2개면에 걸쳐 실렸다.

이승만도 이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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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4년, 국민소득 70불 세계 최빈국 코리아...그런 나라의 국가수반을 성대하게 환영하는 뉴욕의 풍경.
나라는 찢어지게 가난하고 약했지만 한 사람의 뛰어난 지도자가 국격을 얼마나 올려 놓을 수 있는지 이 한 장의 사진만으로도 충분하다.


뉴욕 맨해튼 브로드웨이에서 100만인파의 환호속에 ‘영웅 퍼레이드’를 벌인 이승만은 마지막 기착지 하와이에 도착하자마자 측근에게 지시했다.

“준비는 끝났는가. 등대에 불을 켜라.”

1954년 8월 10일 무인도 독도에 등대불이 켜졌다.

대한민국 국토의 동쪽 끝 땅임을 알리는 등대불!

일본에 남의 땅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 등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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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건국과 동시에 "대마도를 반환하라"고 수십차례 요구했던 이승만.

김일성의 6.25남침으로 물거품 되자 일본이 탐내는 독도에 등대를 건설하고 점등식을 준비해 왔던 이승만의 빅카드.

한일관계 회복을 밀어붙이는 미국에게 보란듯이 미국 방문 중에 ‘독도는 한국땅’임을 선포하는 ‘깜짝 외교 쇼’를 벌였던 것이다.

 

 

 

[출처] 뉴데일리 인보길 칼럼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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